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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입단 (상해의거)

윤의사의 야채상은 사실 거사를 계획하기 위한 탐사 활동이었다. 
의사는 4월 26일 25세에 한인애국단에 입단했다. 
윤봉길의사는 역사적 의거일인 1932년 4월 29일 일찍 교포 김해산(金海山)의 집에서한인애국단( 韓人愛國團) 김구(金九) 단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 1개를 김구 단장으로부터 받아 어깨에 메고 손에 들었다. 
또한 윤의사가 가진 새 시계를 단장의 헌 것과 바꾸어 갖고 의거 준비금으로 받은 돈을 사용하고 나머지를 김구 단장에게 돌려주었다.

 




의거와 순국 (상해의거)

마침내 4월29일 오전 11시 40분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전승축하 기념식전에 투탄했다. 
이 의거로 인해 일본 육군 제3삼자 시라카와 대장, 상해 걸유민 단장 카와바타 등은 폭사하고 노무라 중장, 우에다 중장, 시게메쓰 공사,무라이 영사, 도모노 민단 서기장 등이 중상을 입었다. 기념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윤 의사는 그 곳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5월 25일 윤의사가 민간인이므로 민간 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시의 상황이 일본군에게 매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윤 의사는 일본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11월 18일 다이오마루 일본에 후송되어 오사카 위술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이감, 19일 7시 40분 가나자와 교외 미스교우지 작업장에서 총살 순국했다